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프로이센 공세 (문단 편집) == 공세 초기 == 1월 13일, 포병의 준비사격 아래에 소련군은 공세를 시작했다. 제3 벨로루시 전선군은 공세 첫 날 불과 1.5km 밖에 진주를 못했지만 5일 뒤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20km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했다. 소련군이 동프로이센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이유는 독일군이 진작 대소 국경과 가까운 쾨니히스베르크 주위의 인스터베르크-하일스베르크 축을 따라 상당한 요새화를 했기 때문이다.[* 현재 인스터베르크는 러시아 연방 [[칼리닌그라드]] 주의 체르냐홉스크로 이름이 바뀌었고 하일스베르크는 폴란드령 리즈바크 바르민스키로 이름이 바뀌었다.] 또한 독일군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생산된 대포들부터 중순양함 [[프린츠 오이겐(중순양함)|프린츠 오이겐]]까지 끌어와서 포격지원을 하며 버텼다. 그러나 소련군은 피해를 무릅쓰면서 계속 무려 2주간 대규모 공세를 가했고 방어하던 독일군은 물량에 밀려 전선이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했다. [[에르하르트 라우스]]가 지휘하던 제3기갑군은 많은 기갑 장비들을 손실했으며 프리드리히 호스바흐의 제4군은 궤멸 직전이었다. 1월 14일, [[콘스탄틴 로코솝스키]]가 지휘하는 제2 벨로루시 전선군은 폴란드의 나레프 전역을 공격했고 1월 20일 경 엘빙 지역[* 지금의 폴란드 항구도시 엘블롱크이다.]을 공격했다. 로코솝스키가 독일군 우익을 위협했고 제3 근위 기병 군단이 [[올슈틴|알렌슈타인]]을 점령하면서 독일군 후방까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. 1월 23일, 로코솝스키의 전차 부대는 비스툴라 석호에 도착해 독일군 전체의 통신선을 끊어버렸고 포위망을 형성해 독일군은 더 큰 절망에 처하게 되었다. 호스바흐는 뢰첸[* 현재 폴란드의 기지츠코 지역이다.]에서 병력을 강행군시키며 서쪽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다. [[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]]도 자신의 잔존 제3기갑군 병력들을 철수시키려 한다. 한편 체르냐홉스키는 독일 3기갑군의 잔존 병력을 쾨니히스베르크로 몰아냈고 1월 28일, 제1발트전선군을 지휘하는 [[이반 바그라먄]]은 1944년부터 포위하던 메멜 지역[* 현재의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지역이다.]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.[* 수비하는 독일군 병력은 3개 사단 잔존 병력들이 전부였고 민간인들을 바다로 대피시킨 뒤 철수한다.] 이렇게 독일군 중부집단군 잔존 병력들은 소련군에 포위되었고 소련군 주력은 안정적으로 [[포메른]] 지역에 대한 공세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